국무총리상 수상자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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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67회 작성일 2019-12-13 16:3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정부는 매년 국민교육 발전에 공적을 쌓은 분에게 포상을 하는 제도가 있
습니다. 작년에 이어 금년도에도 민족사업 분야에서 김덕미 선생님께서 민족교육에 이
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국무총리상을 수상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에 지난 19.12.05(목)에 주오사카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 시상식을 개최하였습니다.
감동적인 시상식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올리며 함께 김덕미 수상자의 수상수감문
전문을 아래에 글로나마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1.수상 소감문
2019年12月5日 授賞式挨拶 金徳美
<한국어>
안녕하세요. 金徳美입니다.
먼저 이번에 이렇게 栄光스러운 賞을 받게 되어 感謝드립니다.
駐大阪韓国총영사관 오대규領事님 양호석領事님, 大阪韓国教育院 김차수 院長님을 비롯하여 저를 위해 힘을 써주신 関係者 여러분께 진심으로 感謝드립니다. 그리고,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와주신 秦悦子校長先生 山畑和弘教頭先生 감사합니다.
같이일했던 民族学級의 선생님들, 石井선생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내가 大学生時代에 인생으로 처음에 생겼던 同胞친구들, 오늘 오랜만에 만나되어 너무 기쁩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대단한 賞을 받아도 되는가요?
제가 받은 賞은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선생님들, 民族学級을 위해 항상 저를 도와주고 힘이 되주신 保護者여러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希望과 力을 준 어린이들을 대신으로 제가 代表해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9年 守口시립 第2中学校에 부임한것이 저의 시작이 였습니다. 당시 守口는 1948年의 覚書(각서)로 配置된 선생님이 남아계신 것이 唯一한 希望이였고, 제 使命은 民族学級을 다시 살리는 것이였습니다.
창고처럼 짐이 쌓여 있는 教室의 열쇠를 받고, 우리 애들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뭐부터 해야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부임하자마자 일본학생의 差別발언도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글을 쓴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애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항상 웃는, 밝은 民族講師로 돼자! 教室의 창문을 열어서 장구를 치자”
그해의 가을文化祭 때, 学生 7명이 한복을 입고 장구를 연주했고 한명의 同胞학생이 全교생 앞에서 당당하게 어필도 했습니다.
길이 열었습니다. 民族学級을 개설하기위해 일본선생님들과 会議를 많이 갖었습니다. 그 일년후 民族学級이 다시 생겼습니다.
저는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当時 애들이 흔들리면서도 民族을 원하는 순수한 마음이 제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守口市 의 外国人教育協議会는 하기학교 추기학교 동기학교를 기획했습니다. 그 후 이어 받은 선생님들이 열정가지고 새로운 民族学級을 차례차례 만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大阪市東部지방에 있는 민족학급에 부임했습니다.
北鶴橋小学校에서는 尊敬하는 金容海선생님과 함께 50주년 기념을 맞이하였고,
北中道小学校에서는 열정많은 보호자들과 함께 北中道마당을 活性化시켜, 舎利寺小学校에서는 미족강사의 상근화로 인한 民族学級入級원칙 등 民族教育의 基盤이 만들어졌습니다.
当時의 어린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합니다.
많은 추억이 있지만 오늘 이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10년전에 守口 民族学級의 卒業生한테서 갑자기 電話가 왓습니다.
卒業生이 아버지가 되어 딸이 소학교1学年이 됬답니다.
딸은 日本国籍인데 卒業生은 딸을 民族学級에 보넸데요. 이번 추기학교에서 딸이 북을 연주하니까 보러와 달라, 그런 전화였습니다
며칠후 오랜만에 守口를 방문한 저는 20년만에 그卒業生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 후 민족강사을 퇴직하여 夜間中学校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 卒業生의 어머니와 만났습니다. 어미니는 夜間中学校 学生였습니다. 20년 이상 지났지만 서로 바로 알아볼수 있었습니다.
작년, 북을 연주하고 있었던 卒業生의 딸, 어머니의 손자가 建国高等学校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저는 많이 감동했습니다.
저는 지금 夜間中学校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夜間中学校에서도
소중한 만남이 많이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동포 어르신께서도 在日同胞의 갈등과 기쁨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저는 가르치고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함으로서 제가 배우고 있다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오늘 받게 된 표창은 정말로 저에게 있어서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까지 1世선배들께서 계승된 民族教育이 在日同胞社会의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 더 발전되는것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어>
안녕하세요. 金徳美です。
まず、このたび国からこのような素晴らしい賞を頂きまして、感謝いたします。
駐大阪韓国総領事館 오대규領事님、양호석領事님、大阪韓国教育院 김차수院長님をはじめ、賞をうけるにあたって、お力添えをいただきました関係者の皆様に心より感謝いたします。また、お忙しいなか来ていただきました秦悦子校長先生、山畑和弘教頭先生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共に仕事をしてきた民族学級の先生たち、石井先生、来ていただきまし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そして、大学時代に人生で初めて出会った同胞の友だち、今日は久しぶりに会うことができて、本当にうれしいです。
今日、このような立派な賞を私が受けてもよいでしょうか?
今回の賞は、民族学級の発展のために力をつくしてこられた仲間のソンセンニムたち、いつも見守り大きな支えとなってくださった保護者の皆さん、そして何より私たちに希望と力を与えてくれた同胞の子どもたちを代表していただくものだと考えています。
振り返れば、1989年、守口市立第2中学校に赴任したのがスタートでした。当時守口は、1948年の覚書で措置されたソンセンニムが残っておられたのが唯一の希望で、私の使命は民族学級の再建でした。ガラクタで埋もれた教室のカギを渡され、子どもたちは韓国人であることを隠し、途方に暮れる毎日でした。赴任してすぐに日本人生徒の差別発言もありました。当時、私は次のような一文を記していました。
「私の肩にくいこむしんどさは、子どもたちにはどれだけ重くてつらいことだっただろう。いつも笑って明るい民族講師でいよう!教室の窓を開けてチャンゴをたたこう。」その年の秋の文化祭、7名の生徒がチョゴリを着てチャンゴの演奏をし、一人の同胞生徒が全校生徒に向けてアピールをしました。
道は開かれました。民族学級を開設するために、日本人の先生たちと会議をたくさんもちました。その1年後に民族学級が再建されました。私は無我夢中でしたが、振り返れば、当時の子どもたちの揺れ動きながらも求めていた純粋な気持ちに、若き頃の自分の姿を重ね、突き動かされていたのだと思います。
守口市の外国人教育協議会(市外協)は、ハギハッキョ、チュギハッキョを立ち上げていました。その後引き継いだソンセンニムたちは、次々に民族学級を立ち上げていきました。
その後私は、大阪市東部の民族学級に赴任しました。北鶴橋小学校では、尊敬する金容海ソンセンニムとともに50周年記念を迎えました。北中道小学校では情熱にあふれた保護者たちとともに北中道マダンが充実、舎利寺小学校では民族講師の常勤化により入級原則など外国人教育の礎ができました。
当時の子どもたちは、今どう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たくさんの思い出がありますが、今日はひとつのお話しを紹介します。
10年程前、守口の民族学級卒業生から突然電話がかかってきました。卒業生はアボヂとなり娘が小学一年生になったといいます。卒業生の娘は日本国籍ですが娘を民族学級に入らせたそうです。今度の守口チュギハッキョで娘がプクたたくから見に来てほしい、という電話でした。数日後、久しぶりに守口に訪れた私は、20年ぶりに卒業生と再開しました。その後民族講師を退職、夜間中学で勤務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が、そこで、その卒業生のオモニと出会いました。オモニは夜間中学の生徒だったのです。20年以上たっていましたが、お互いにすぐにわかりました。昨年、プクをたたいていた卒業生の娘オモニの孫が建国高校に入学したとの知らせに、私は感慨深いものがありました。
私は今夜間中学で働いています。夜間中学でも同胞との貴重な出会いがたくさんあります。年齢を重ねてこられた同胞もまた、在日としての苦悩や喜びをもっておられることを改めて感じています。民族学級時代もそうでしたが、私は、教えているのではなく、学んでいるのだと、今も実感しています。今日いただく賞は、本当に励みとなります。
最後に、一世の諸先輩たちから受け継いだ民族教育が、在日同胞社会の未来のためにこれからも一層発展していくことを心より願って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2.수상식 현장 사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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